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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웜홀, 블랙홀, 상대성이론 등 실제 물리학 이론을 영화 속에 정교하게 녹여냈고, 이는 천체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의 자문을 받아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거쳤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 과학에서도 연구되고 있는 이론들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터스텔라 속 과학적 개념들을 분석하고, 실제로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살펴본다.
영화에서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와 탐사대원들은 토성 근처에서 발견된 웜홀을 통해 새로운 은하계로 이동한다. 웜홀은 공간과 공간을 잇는 가상의 터널로, 블랙홀과 달리 물질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통로라고 묘사된다.
웜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수학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된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제로 관측된 적은 없다. 웜홀을 유지하려면 ‘음의 에너지(negative energy)’를 가진 물질이 필요하며, 이는 현재 과학으로는 확인되지 않은 물질이다.
하지만 웜홀이 존재한다면 우주 탐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기술로는 빛의 속도로도 몇 년, 몇 천 년이 걸릴 거리도 웜홀을 이용하면 단숨에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인류가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로 이동하는 것은 아직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과학자들은 중력이 매우 강한 천체 주변에서 웜홀의 존재를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영화에서 탐사대는 블랙홀 '가르강튀아' 근처의 행성 밀러 행성에서 1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우주선에서 기다리던 로밀리는 23년이 지나 늙어버린다. 이는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Gravity Time Dilation) 현상 때문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장에 있을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즉, 블랙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사람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
과학적으로 보면 인터스텔라의 묘사는 상당히 정확하다. 실제로 킵 손 박사는 영화 속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모델링을 과학적으로 계산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블랙홀 묘사와는 다른 광학적 왜곡 효과가 발견되었다. 이는 후에 천체물리학 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속 밀러 행성에서의 시간 지연 정도(1시간 = 7년)는 블랙홀의 물리적 특성상 극단적인 설정이며, 현실에서 그러한 행성이 존재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원리에 대한 설명은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쿠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테서랙트(Tesseract)’라고 불리는 5차원의 공간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그는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 분)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 외에도 추가적인 차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끈이론(String Theory)과 같은 이론에서는 최소 10차원의 우주를 가정하며, 우리 우주가 고차원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인터스텔라에서는 중력이 5차원에서 3차원으로 전달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이는 완전히 허구적이진 않다. 실제로 중력파(Gravitational Waves)는 2015년 라이고(LIGO) 실험에서 관측되었으며, 이는 블랙홀 충돌과 같은 우주적 사건에서 생성된 시공간의 잔물결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중력을 이용해 과거와 소통하는 것은 현재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은 차원을 초월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물리학적으로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이며,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학적 고증이 철저한 영화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는 영화적 허용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개연성을 유지하며, 대중들에게 현대 물리학의 흥미로운 개념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인터스텔라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실제 과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장 정교한 우주 영화 중 하나다. 웜홀, 블랙홀, 시간 지연, 중력파 등의 개념을 영화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우주 탐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화의 과학적 모델링은 학계에서도 인정받아 킵 손 박사가 참여한 블랙홀 시뮬레이션이 실제 연구에 활용되기도 했다.
비록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도 많지만, 인터스텔라는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해 다시 한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스텔라는 SF 영화의 걸작으로 남아 있으며, 과학과 철학을 동시에 탐구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